-
[독서노트, 마인드맵] 고양이 1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책 이야기 2021. 7. 19. 01:14반응형
「그쪽 정수리에 붙은 연보라색 판은 뭐죠?」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한다.
「내 제3의 눈이야.」
「제3의 눈? 그게 뭔데요?」
「USB 단자야. 컴퓨터에 접속해서 인간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지.」
뭐, 뭐라는 거야?
거짓에 익숙해진 자들의 눈에는 진실이 의심스럽게 보이는 법이니까.
지식은 의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편협한 세계관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게을러빠진 뚱냥이 펠릭스는 아비로서의 책임은 뒷전이고 오로지 먹고 자기만 한다. 게다가 나탈리한테 <캣닢>을 한번 얻어먹더니 아주 환장을 한다. 마약이야말로 펠릭스와 같은 단순한 영혼을 통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겠지.
이상한 일이야. 인간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아무렇지 않다니. 처음 있는 일이야. 예전에는 쓰러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을 보면 가슴이 저릿하고 마음이 불편하고 욱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내가 무감각해진 걸까?
새끼들을 잃은 충격을 소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결국은 나도 나탈리처럼 인간들의 폭력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져 갈 거야.
「복수할 거야.」
「쓸데없는 소리. 방금 네 눈으로 봤잖아. 가만히 내버려 둬도 인간들은 자멸하게 돼 있어. 이제 상황이 테러 수준을 넘어 내전으로 치닫고 있어. 뭐하러 에너지를 낭비해 가면서 그들과 맞서? 안젤로한테 급변하는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해 주는 게 지금 네가 할 일이야.」
「모든 폭력은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서 나타나는 뿌리 깊은 반사적 본능으로 설명할 수 있어. 처음에는 파괴가 우리를 지켜 주고 생존을 보장해 줬지. 세상에는 늘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했어. 그런데 그 존재 이유가 사라진 지금, 폭력은 억눌린 본능의 분출에 다름 아니야. 오줌을 누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과 똑같지.」
「왜? 바스테트,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일 수 있어. 지구의 입장에서는 고양이나 인간이나 똑같이 자기한테 붙어서 몸을 간지럽히는 기생충으로 보일 수 있어. 이 기생충들을 털어 내려고 한바탕씩 지진을 일으키는지도 모른다고.」
모든 게 소통의 문제일 수도 있어.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달할 필요도 있는 거야.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인간 집사도, 같이 자식을 낳은 수컷도 어쩌면 이렇게 소통이 안 될까. 유일하게 소통이 되는 대상이······ 이웃 집에 거만한 샴고양이인데······ 날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그런 인간들에게 결국불운이 닥쳤지. <페스트>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했거든. 쥐가 옮기는 병이었는데, 우리를 대신해 쥐들이 인간을 파괴하는 역할을 맡아 줬던 셈이지.」
인간들의 몸이 사지를 뒤틀며 넘어지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내 손으로, 난생처음, 인간들을······ 죽였어! 가능하구나. 고양이가 도구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알면 인간의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구나.
「현실을 견딜 수 없게 인간을 짓누를 때 그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바로 상상력이야. 이 영화를 보면 뉴스가 지닌 불안과 공포의 위력과는 전혀 다른 위안의 힘을 허구가 지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TV는 갈수록 충격적인 이미지를 원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영화 속 허구의 세상에도 폭력이나 섹스 같은 자극적인 장면이 난무한다. 인간이 지닌 정신의 감각은 자연스럽게 무뎌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장소에 들어서면 나쁜 파동을 감지하지 못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자신에게 유익한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밀려드는 시각 이미지들을 처리하고 정리하고 거르느라 분주하다. 인간의 정신이 자기만의 활동을 하는 시간은 잘 때뿐이다.
728x90'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노트] 홀 - 편혜영 (0) 2021.07.27 [독서노트, 마인드맵] 고양이 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0) 2021.07.20 [독서노트, 마인드맵]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 - 한재우 (0) 2021.05.13 [독서노트, 마인드맵] 플랜트 패러독스 - 스티븐 R 건드리 (0) 2021.05.12 [독서노트, 마인드맵]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0) 2021.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