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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의 무법지대, 홍콩 구룡성채: 도시 속 암흑의 성
    역사 이야기 2025. 4.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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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한복판, 비행기와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솟은 콘크리트 건물들. 삭막한 외관과 빽빽한 주거 공간, 그 위를 스치는 거대한 항공기—영화 속 디스토피아의 상징 같지만, 이 장면은 실제 존재했던 장소를 바탕으로 합니다. 바로 홍콩 구룡반도에 있었던 전설적인 무법지대, 구룡성채(九龍城寨, Kowloon Walled City) 입니다.


    1. 구룡성채의 기원과 배경

    구룡성채의 시작은 19세기 청나라 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는 영국과의 불평등 조약에 의해 홍콩 섬을 내주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구룡반도에 해안 요새를 건설합니다. 이곳이 바로 훗날 '구룡성채'라 불리게 되는 군사 기지였습니다.

    이후 1898년, 영국은 구룡반도 북쪽의 넓은 지역(신계)을 99년간 조차하면서 구룡성채는 영국령 홍콩 한가운데에서 중국 영토로 남겨진 독특한 지역이 됩니다. 행정권이 불분명한 이 애매한 지위가, 훗날 구룡성채를 법과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무법지대로 만들게 되는 기반이 되었죠.


    2. 전쟁과 혼란 속에서 피어난 불법 도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중국 내전의 혼란 속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구룡성채로 몰려들었습니다. 어느 정부도 실질적인 통치를 하지 않는 이곳은 점차 자생적인 주거지로 발전하며, 주민들 스스로 집을 짓고 생계를 꾸려가는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법의 사각지대가 된 구룡성채는 삼합회(홍콩 조직폭력배)의 활동 무대가 되어 마약, 도박, 불법 의료행위 등 온갖 범죄가 자행되었고, 외부에서는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암흑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구룡성채는 ‘흑암지성(黑暗之城)’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죠.


    3. 상상을 초월한 인구밀도와 자생적 생활

    구룡성채의 면적은 겨우 2.6헥타르, 잠실야구장의 절반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최대 5만 명 이상이 살았으며, 인구밀도는 평방 킬로미터당 190만 명, 당시 서울의 100배에 달했습니다.

    이 작은 공간 안에는 주택, 병원, 학교, 마트, 세탁소뿐 아니라 각종 공장과 불법 시설이 입주해 있었고, 심지어 의료진 면허를 인정받지 못한 본토 의사들이 치과나 진료소를 운영하며 홍콩 시민들도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공식 상하수도망이 없었기 때문에 물배달원이 있었고, 좁은 건물 사이를 줄로 연결해 빨래를 널거나, 베란다와 테라스를 증축해 집을 확장하는 등 생활에 최적화된 입체 미로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4. 공존의 끝, 철거와 변신

    구룡성채는 비행기의 이착륙을 위협할 정도로 무분별하게 증축되었고, 1980년대 들어선 홍콩 반환을 앞두고 영국과 중국 모두 이 공간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1984년 양국은 홍콩 반환에 합의하며 구룡성채를 공식적으로 홍콩 정부의 관할로 편입시켰고, 1993~1994년 사이 경찰과 군을 동원해 전면 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자리는 현재 ‘구룡성채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한때의 혼란과 자율성, 그리고 혼돈이 깃든 도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공원 한쪽에는 청나라 시절의 유적 일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5.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실현, 그리고 유산

    구룡성채는 철거 이후에도 대중문화 속에서 꾸준히 등장하며 '현실 속 디스토피아'의 대표 사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 홍콩 느와르 영화의 배경
    • 일본 애니메이션, 미국 영화 속 영감의 원천
    • 일본 탐험가들이 만든 실내 지도 등

    특히 일본에서는 ‘구룡성체 매니아’라 불리는 팬층까지 형성되었고, 구룡성채를 그대로 재현한 테마 바나 전시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결론: 구룡성채가 남긴 것

    구룡성채는 법과 제도가 철저히 부재한 상황에서도 인간이 자생적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돈과 불평등, 범죄의 그늘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낸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도시를 설계하고 관리할 때 구룡성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합니다. 법의 사각지대가 만들어내는 ‘도시 속의 던전’은 일시적인 피난처가 될 수 있지만, 결국 지속 가능한 삶의 공간으로는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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