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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가 된 중동의 중심, 시리아 내전 이야기
    역사 이야기 2025. 5.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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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제의 개요 및 배경

    한때 중동에서 가장 번영했던 나라, 시리아는 지금 폐허가 된 모습입니다.
    2011년, 작은 시위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이어지면서 촉발된 시리아 내전은 단순한 국내 갈등을 넘어 미국,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 등 국제 강대국들과 극단주의 세력까지 얽힌 거대한 국제전으로 번졌습니다.
    13년간 지속된 전쟁은 시리아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2024년 12월, 마침내 평화를 맞이했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시리아 비극의 씨앗은 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스만 제국의 패망 후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한 시리아는, 독립 이후에도 내적인 불안과 권력 투쟁 속에서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2. 성장과 변화

    1970년 하페즈 알 아사드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며 시리아는 겉보기엔 안정된 듯했지만, 실상은 불만과 종파 갈등이 쌓여갔습니다.
    알 아사드는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 출신으로, 수니파 다수를 탄압하고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그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가 권력을 세습하며 국민들은 개혁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강력한 독재와 부패가 이어졌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 물결 속에서 시리아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정부의 폭력적 진압은 시리아를 내전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자유 시리아군이 등장했고, 쿠르드족과 극단주의 세력 IS까지 가세하면서 전쟁은 복잡해졌습니다.


    3. 사회적 갈등과 선택

    시리아 내전은 단순한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종파 갈등, 민족 독립운동, 그리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국제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와 이란은 정부군을, 미국과 튀르키예는 반군과 쿠르드족을 지원했습니다.
    심지어 반군 내에서도 이념과 민족을 둘러싼 충돌이 이어졌습니다.

    튀르키예는 쿠르드족 확장을 막기 위해 직접 개입했고, IS의 등장과 미군 철수 등으로 시리아 북부는 새로운 전장으로 변했습니다.
    팬데믹과 세계 정세의 변화는 시리아 전황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시리아 정부군의 지원을 약화시켰고, 결국 반군이 다시 힘을 얻어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4. 결과와 영향

    2024년 12월, 반군 연합 HTS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며 긴 내전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바샤르 알 아사드는 러시아로 망명했고, 시리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깊었습니다.
    13년간 약 60만 명이 사망하고, 1,300만 명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고향을 잃었고, 경제와 사회 기반도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새롭게 권력을 잡은 HTS는 온건 세력이나 세속주의 세력과 성향이 달라 향후 통치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큽니다.
    또한, 해외에 흩어진 난민 문제 역시 심각한 해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5. 결론

    시리아 내전은 단순한 국내 갈등이 아닌, 20세기 식민지 유산, 종교 갈등, 국제 세력 간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비극이었습니다.
    13년간의 처절한 전쟁 끝에 평화는 찾아왔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앞으로 시리아는 무너진 사회를 재건하고, 국민들의 삶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과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시리아에 진정한 안정과 화합이 깃들어, 난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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