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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 재판여자 이야기 2021. 6. 17. 18:02반응형
1692년 세일럼
1692년 1월 20일, 메사추세츠의 청교도 목사새뮤얼 패리스의 딸 베리 패리스와 조카 애비게일 윌리엄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본 패리스 목사는 두 아이를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헛수고였고, 오히려 두 아이는 누군가가 바늘로 찌르고 손톱으로 할퀴는 것 같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두 소녀의 치료를 하던 의사는 증상이 낫지 않자 "이게 다 마을에 숨어있는 마녀들 때문이다"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후 마을 사람들은 마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두 소녀를 추궁하게 된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마녀를 지목하지 않으면 너희 둘을 화형시키겠다!"
그렇게 두 소녀는 다른 이를 마녀로 지목하게 된다.
광기 어린 재판의 시작
소녀들은 환각상태에서 봤다는 유령들을 지목했다. 패리스 목사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인디언 티투바, 마을의 비렁뱅이로 입이 험한 여인, 하인과 결혼해 구설에 자주 올랐던 노파가 첫 희생자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을의 다른 소녀들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면서 마녀들에 대한 고소가 이어졌다. 주민 서로가 서로를 마녀로 지목했고 세일럼 감옥은 마녀 혐의자로 가득 찼다. 이 마녀사냥으로 최소 175명이 감옥에 갇혔고 이 중 20명이 처형되고 5명이 옥중에서 사망했다. 한 80세 노인은 몸에 널빤지를 얹고 그 위에 돌덩이를 쌓는 고문을 받다 짓눌려 사망하기도 했다.
세일럼 마녀 재판에서 처형된 인물은 모두가 마녀임을 부정했다. 하지만 마녀임을 자백 한 사람은 한 명도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았다.
발작의 원인
일반적으로는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소녀들이 집단 발작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1976년 심리학자 린다 캐포렐은 세일럼 마녀 사건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분석했다.
세일럼 마을 사람들의 주식은 호밀빵이었다. 이 호밀은 세일럼의 습한 날씨로 인해 맥각(麥角)이라는 균에 감염되기 쉬웠다. 맥각은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소녀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오염된 호밀빵은 현기증, 팔다리의 특이한 경련 내지는 뒤틀림, 광적인 흥분, 환각, 망상 장애와 정신이상을 일으켰다.
집단 광기
1500년부터 1660년까지 종교개혁으로 야기된 종파적 갈등이 심했던 당시 세일럼 정부는 종교적으로 반대되는 세력을 마녀 재판에 회부하여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바로 이점을 악용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 세일럼에서는 청교도 가부장제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세우고 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명분없이 여성들을 처단할 수 없었던 정부는 마녀 재판이라는 방법으로 행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다른 이유를 들어 고의로 임의의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넣었고 그렇게 수많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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