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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 동두천 윤금이 사건
    여자 이야기 2021. 6.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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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10월 28일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 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 씨가 피살됐다.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집주인 김성출 씨가 피살자를 발견했을 때 윤씨는 나체 상태였으며, 자궁에는 맥주병 2개가 꽂혀 있었다. 또 성기 밖에는 콜라병이, 항문에서 직장까지 27cm의 우산대가 꽂혀 있었다.

     

    범인은?

     범인은 미2사단에 근무하는 미군병사 케네스 리 마클(Kenneth Lee Markle,당시 20세) 이병이었다. 경찰조사 결과 케네스 이병은 27일 저녁 클럽에서 윤금이 씨를 만나 집으로 가던 중 전날밤 윤금이와 잠자리를 했던 제이슨 램버트 상병을 만나게 된다. 램버트 상병은 '어젯밤 함께 잤던 여성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시비를 걸어 램버트 상병과 케네스 이병은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이후 케네스는 윤금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방 안에 들어가서 범행을 저질렀다.

     

    분노한 시민들

     검거된 케네스는 1993년 4월 14일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그해 12월 16일 재판에서는 15년형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미군이 범인의 신병을 인도하지 않자 '주한 미군의 윤금이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비롯한 대학가의 시위가 잇따랐다. 또한 동두천시 택시기사들이 '미군 승차 거부 운동'을, 상인들이 '미군 손님 안 받기 운동'을 벌였으며, 그해 11월7일 2,000여 명이 시민규탄대회를 미2사단 정문 앞에서 열었다.

     미군은 마지못해 사건발생 1년 6개월이 지난 1994년 5월 17일 케네스의 신병을 인도해 그는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 2006년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나 출국했다.

     

    윤금이 사건 이후

     윤금이 사건은 한국 여성들의 기치촌 유입을 급격히 감소시킨 계기로 작용했다. 미군이 뿌리는 달러만이 유일한 생계수단이 됐던 1960~1970년대에야 미군의 온갖 폭력에도 참고 견디었고, 운이 좋으면 미군과의 결혼을 꿈꾸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성매매 여성들은 미군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한국인 향락업소에서 비슷한 소득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군의 폭력성을 안 이상 구태여 기지촌에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에 따라 기지촌에 유입되는 성매매 여성의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필리핀이나 베트남, 중국,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에서 미군 상대 성매매 여성 수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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