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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천민 일본의 '부라쿠민'역사 이야기 2022. 5. 15. 14:47반응형
천민의 마을
부라쿠란 우리말로 '부락'에 해당하는 한자어를 일본식으로 읽은 말이다. 원래 마을, 취락, 소규모 지역 공동체 등을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말 메이지유신이라고 부르는 급격한 사회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 국가가 성립했다. 그 이전의 에도시대까지는 무사, 농민, 장인, 상인 등 신분이 엄격하게 구분된 봉건 사회였다. 에도시대에 인신 매매와 노비 제도는 금지되었지만, 식육이나 우마의 가죽을 처리하는 일, 사형집행, 장례, 오물 처리 등 특정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최하층 신분으로 분류되었다. 이들은 논밭을 가질 수 없고, 생활에 필요한 권리도 인정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는 동떨어진, 악조건의 지역에 모여 살아야만 했다. 역사적으로 천민으로 분류되어 차별받던 이들이 살던 지역이나 마을이 바로 부라쿠다.
미흡했던 신분제 폐지 정책
1871년, 메이지유신과 선포된 '해방령'에 의해 일본에서 신분제는 공식적으로 철폐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관습처럼 반복되어 왔던 차별적 관행을 없애려는 노력이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메이지 정권의 해방령은 근대적인 통치 시스템을 확립시키고자 하는 지배자의 논리에 따른 조치였다. 신분과 차별에 반대하는 인권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명분상으로는 신분제를 철폐한 뒤에도 상취 계층에게만 주어졌던 특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없어지지 않는 차별
부라쿠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이른바 '동화정책'이 추진되었다. 생활 인프라를 정비함으로써 부라쿠와 다른 지역의 격차를 해소하고, 차별적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본 인권 교육도 강화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별은 좀 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부라쿠 출신자들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고통받았고, 취업이나 승진 등에서도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 연애나 결혼에서도 벽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아 '결혼 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인터넷 시대와 부라쿠민
2016년 한 출판사가 5,000여 곳에 달하는 부라쿠의 이름, 가구 수, '해방 운동'에 참여한 당사자의 개인정보 등을 한데 모아 '부라쿠 지명 총람'이라는 서적을 출판했다. 2021년 이 서적의 출판, 판매, 인터넷 개제 등을 금지하는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졌지만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이 서적이 거래되고, 소셜 미디어에 관련 정보가 공공연히 게시된다. 부라쿠 정보를 총괄하는 리스트는 원래 '동화정책'울 추진하면서 실태 조사를 위해 일본 정부에서 초안을 작성한 것이다. 그런데 그 취지가 무색하게 1970년대 대기업 등에서 부라쿠 출신을 걸러내는 '블랙리스트'로 악용되었다. 법으로 금지되었던 악명 높은 블랙리스트가 인터넷 시대에 다시 한번 등장한 것이다.
계속되는 악순환
오랫동안 낙후된 채로 방치되어 온 부라쿠 지역은 생활이나 교육 인프라가 열악하고 범죄율이 높은 곳이나는 낙인이 찍혔다. 부라쿠 출신이라고 하면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안정적인 취업도 어려웠기 때문에 폭력배가 되거나 범죄 조직에 합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차별적 편견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 진출의 길이 막히고, 그러다 보니 부정적인 인식만 커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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