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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핀란드와 러시아의 겨울전쟁
    역사 이야기 2022. 5. 2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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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amu.wiki/w/%EB%8F%85%EC%86%8C%20%EB%B6%88%EA%B0%80%EC%B9%A8%EC%A1%B0%EC%95%BD?rev=361

     

    독일과 러시아의 '몰로로프-리벤트로프 조약'

     핀란드는 스웨덴에 600년, 러시아에 100년간 지배를 받다가 러시아 혁명기를 틈타 1917년에 독립했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은 내전에 승리하기 위해 변방국 핀란드의 독립을 허용했지만, 소련으로 체제를 바꾸어 안정되면서 다시 핀란드를 노렸다. 

     1939년 8월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동유럽을 나눠 먹는 내용의 몰로로프-리벤트로프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에 의하면 핀란드는 소련의 영향권에 포함되었다. 스탈린은 러시아 제국 시절 차르 치하의 대공령이었던 핀란드를 손에 넣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1ZALGZ4AWM

     

    겨울전쟁

     전쟁은 소련의 일방적 요구로 시작되었다. 1939년 10월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핀란드를 방문해 일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협정요청을 요구했다. 스탈린의 영토욕을 반영한 조건이었다. 소련군의 일방적인 핀란드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이듬해 3월 12일 모스크바 조약으로 종전될 때까지 105일 동안 혹독한 겨울 내내 치러진 전쟁이었기에 '겨울전쟁'이라고 불린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0/2018022003431.html

     

    핀란드의 격렬한 저항

     11월 30일 소련군은 헬싱키를 비롯해 핀란드 대도시 21곳을 폭격하고, 동시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당시 군사력은 소련이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핀란드 군의 저항은 격렬했다. 핀란드군은 현지 지형지물을 숙지하고 있었고, 주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우파 정부와 오랫동안 갈등을 치렀던 핀란드 공산당이 조국 방위에 나섰다. 좌파와 우파의 갈등이 해소되었고, 언어적 파벌 대립관계도 풀어졌다. 미국에 이민 갔던 핀란드인도 조국 방어를 위해 돌아왔다, 서유럽에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의용군이 자진해서 핀란드 편에 섰다.

     

    https://bemil.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2/05/2016020501314.html

     

    빼앗긴 영토

     1940년 3월 12일 모스크바에서 소련 외무상 몰로토프와 핀란드 총리 리스토 리티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 강화조약에서 핀란드는 국토 중동부의 살라와 인구의 12퍼센트에 해당되는 42만 명이 살고 있는 산업중심지 카렐리야를 소련에 빼았겼다. 또 북부 바렌트 해에 접한 칼라스티안사렌토 반도와 핀란드만에 산재한 여러 섬들도 내주었다.

     

    https://steemit.com/kr/@gochuchamchi/pe3a3-2

     

    계속전쟁

     곧이어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핀란드는 소련에 대한 치욕감에 독일 편에 붙었다. 그리고 이번엔 빼앗긴 영토를 찾기 위해 소련에 침공했다. 1941년 6월 25일에 재개되어 1944년 9월 19일까지 이어진 이 전쟁을 핀란드에선 계속전쟁이라고 부른다.

     핀란드는 계속전쟁에서 잃었던 땅을 일시적으로 수복했지만,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연합국 측으로 돌아섰다. 소련이 연합국 일원이었으니, 당연히 계속전쟁도 중단해야 했고, 수복했던 땅도 돌려주었다.

     아직도 핀란드는 겨울전쟁에서 빼앗긴 땅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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