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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을 산 채로 태우는 인도의 악습 '사티(Shakti)'
    여자 이야기 2021. 10. 2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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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ulzine.com/paper/view/1084

     

    사티(Shakti) 풍습

     사티는 남편이 죽으면 시체를 화장할 때 아내가 불 속에 뛰어들어 남편의 시체와 함께 불타는 풍습이다. 사티라는 말의 어원은 '정숙한 아내'를 의미하는데, 사티는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에는 인도 전역으로 사티 풍습이 퍼지면서 각각의 마을에는 사티를 기념하는 돌이 수없이 많이 생겼다. 가족들은 과부가 사티에 의해서 희생당하면 가족의 종교적인 죄가 없어진다고 믿어 사티를 조장하였다. 또 현실에서의 과부의 지위, 과부 생활의 비참함 또한 이러한 상황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샤티의 대부분은 과부의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친족의 강요와 약물로 인해 일어났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Sati

     

    시바신의 아내 '사티'

     사티 풍습은 인도 신화에서 유래되었는데, 시바신의 첫 번째 아내의 이름이 사티이다. 사티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다크사는 신들을 모아놓고 사티의 남편을 물색하였다. 시바는 그 의식에 초대받지 못하였지만 사티는 자신의 남편으로 시바를 선택했고 결국 둘은 결혼하게 된다. 그 후 시바는 다크사에게 건방지게 행동하였고 이에 크게 화가 난 다크사는 또다시 시바를 제외하고 성대한 의례를 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사티는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기 위해 화염 속으로 들어 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바는 다크사에게 처들어 사 복수를 하고 사티의 시신을 되찾아 온다.

     이 이야기의 사티는 인도인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이라 생각하게 된다.

     

    https://wirit.tistory.com/275

     

    인도에서 과부로 산다는 것

     남존여비 사상(남성의 권리나 지위 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어 존중하고 여성을 천시하는 사상 및 태도)이 심한 인도에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여성에게 큰 재앙이었다. 과부는 친척들로부터 가문의 남성들 중 한 명과 동침할 것을 강요당했는데, 남편이 사망할 경우 그 재산이 전부 아내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여자는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낙인이 찍히면서 일평생을 집안에서만 살아야 했다. 

     힌두교 관습에 따라 과부들은 재혼도 할 수 없었고, 다른 남성을 유혹해서는 안 된다면서 머리카락을 전부 깎였다.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과 하얀 옷 외에 다른 색의 옷을 입는 것 또한 금지되었다.

     

    https://www.dogdrip.net/doc/22940115

     

    문제는 돈

     친척들이 자신의 가족인데도 과부가 된 여자에게 사티를 종용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때문이다. 사티를 행한 여자는 여신으로 승격되어 사원이 지어지고 친척들은 막대한 기부금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친정과 시가(남편의 가족) 양쪽에 엄청난 부가 보장되었다. 그래서 집안에 과부가 생기면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가족을 산 채로 불태우는 인면수심의 행태가 나타난 것이다.

     또 사티를 주관하는 브라만들도 결탁되어 있었다. 과부에게 화려하고 비싼 장신구를 착용하고 순사(죽은 사람을 따라 죽음)할 것을 권장했는데, 사티가 끝난 후 재 속에서 그 장신구를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적 부패와 함께 돈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점, 인명을 경시하는 점,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를 들어 몇 번이나 금해지고 행해지기를 반복하였다.

     

    https://m.blog.daum.net/samuellim/170

     

    선교사 '윌리엄 캐리'

     사티 폐지에 결정적으로 이바지 한 사람은 기독교 선교사 '윌리엄 캐리'였다. 캐리와 동료 선교사들은 여성 교육의 부재가 인도 여인들이 학대받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여성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넓히기 위해 많은 학교를 세우고, 사티뿐만 아니라 여아 살해나 어린이 매춘 등 다른 악습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정부는 힌두교도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사티 폐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선교사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폐지 운동을 계속 이어나갔고, 바로소 1892년 법으로 사티를 금지시킬 수 있었다. 

     

    https://postshare.co.kr/archives/274210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악질적인 사티 풍습이 폐지된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몇몇 힌두교 단체에서는 사티 제도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사티 풍습으로 죄 없는 과부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지고 있다.

     2006년 8월 22일 인도의 마드야 프레시주의 툴시푸르 마을에서 열른 프렘 나라얀이라는 남성의 장례식에서 사망자의 아내인 자나크리니라는 40대 여성이 불에 뛰어 들었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끔찍하게 여기기는 커녕 사티를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여 죽은 여자가 불에 뛰어든 현장에서 종교의식을 행했다. 과부가 불에 탄 후 남은 재를 만져보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때 아닌 관광특수까지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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