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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마을 '나기레브'여자 이야기 2021. 9. 27. 17:25반응형
익명의 제보
1920년대 말, 인근 도시 솔노크 경찰에 나기레브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이름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고 불쾌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누군가 동네에 떠도는 소문을 그냥 써 내려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타인에게 독을 먹였습니다. 미시 베케 삼촌은 로자키스에게 살해당했고, 그 여자는 자기 남편과 나이 든 야노스 파파이 부인도 죽였고, 산도르 센디와 피스타 발키 부인을 죽이려 했는데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 말고 얼마나 더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1929년 신문에 편지가 실리자 어쩔 수 없이 주 정부가 개입해야 했고, 신문과 타블로이드지의 호들갑 탓에 헝가리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언론과 정부는 빨리 수사 결과를 내놓으라 연일 지역 경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드러난 비밀
은밀한 사건이 20년 동안 계속된 끝에, 나기브레는 커다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해 연말까지 수백 명이 조사를 받았고, 50개가 넘는 무덤이 발굴되었으며, 그중 40구의 시신에서 비소가 검출되었다. 사법 당국은 여성 34명과 남성 한 명을 기소했다. 이 일탈자들을 보려고 사람들은 기를 쓰고 법정으로 모여들었다.
그녀들은 왜 살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나?
당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남자들은 상한 몸과 분노와 정신적 상처를 안고 돌아왔다. 대공황에 따른 농산물 위기로 생산물을 팔기도 어려웠으며 외부와 연결되는 버스나 기차도 없었기에 세상과의 접촉도 드물었다. 많은 남자들이 알코올 중독이었고 폭력을 휘둘렀다. 많은 여자들은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면서도 혼자 뛰쳐나가기보다는 남편이 벌어 오는 작은 수입을 받으며 참고 살았다.
살인이 아니다
나기레브의 여성들은 이런 결과가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많은 이들이 무엇이 '살인'이라는 건지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남편을 칼로 찌르거나 물에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단지 독으로 죽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편안한 죽음이지 살인이 아닙니다.
독살을 '편안한 죽음'이라고 본 것은 죽음에 대한 무감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 정신적 신체적 손상을 입은 채 돌아왔고, 먹을 것이 부족했고, 아이들은 항상 파리 목숨처럼 쉽게 죽었다.
그녀들의 마지막
쏟아지는 증오 앞에서 나기레브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단순하고 수수한 할머니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마침내 선고가 내려졌다. 다른 사람의 살인에 도움을 제공한 사람들은 사형을 선고 받았다. 대부분은 종신형 혹은 긴 징역형을 받았고 몇 명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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