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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의 생리대 '개짐'
    여자 이야기 2020. 12. 2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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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짐을 착용할 때 사용한 다리속곳

    과거 생리대를 부르던 말. 개짐.

     개짐은 생리대의 순 우리말로 지역에 따라 '달거리포', '월경포'라 부르기도 하였다. 개짐의 재료로는 무명이 가장 널리 쓰였으며, 기저귓감처럼 부드럽고 흡수성이 좋은 옷감을 선호했다. 경우에 따라 낡은 무명옷을 재활용하거나 오랫동안 입어 부드러워진 삼베옷을 잘라 여러겹 겹쳐 썼다고 한다.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물건

     월경을 처음 시작하면 어머니가 딸에게 개짐을 만들어 주었고 딸은 어머니에게 개짐의 사용법과 세탁법을 배웠다. 사람들 앞에 드러낼 수 없는 물건이었던 개짐은 밤에 몰래 나가서 빨아야 했는데 겨울밤에 밖에 나가 개짐을 몰래 빨아야 한다고 하면 정말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일반적인 빨래와 달리 개짐에는 혈흔이 남기 때문에 얼룩을 깨끗하게 지우기가 쉽지 않았다. 사용한 개짐은 잿물에 넣어 삶아 빨거나 오줌에 담가 혈흔을 완전히 빼내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널어 말렸다.

     

    월경에 대한 믿음

     월경은 후세대를 생산할 수 있는 생식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산(多産)한 여자의 피가 묻은 개짐을 얻어서 샅에 차면 아들을 낳거나 많은 자손을 얻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에게는 아내의 개짐을 몸에 지니고 산에 오르는 풍습이 있는데 여자를 좋아하는 신선을 꾀어 산삼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고, 지독한 가뭄, 기우제도 안 통하는 정말의 순간, 혹은 전염병에 사람들이 마냥 죽어나갈 때 마을 여성들이 개짐을 장대에 높이 내건채 액막이 시위를 하였다. 모권(母權) 즉, 생산성을 상징하는 월경과 개짐에는 잡귀들을 내쫓을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개짐

     조선시대 여성들의 거의 대부분 무명천을 썼는데, 이 무명천 중 최고의 생리대로 분류된 것은 상여 앞에 세웠던 깃발인 공포(功布)였다. 공포가 무명천으로 만들어진 이유도 있었지만 아들을 많이 낳은 남자 상여의 공표는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믿음이 있었가 때문에 그 공표를 차지하기 위한 아낙네들의 다툼이 벌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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