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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세 소년공의 죽음 '문송면 수은중독 사건'
    역사 이야기 2022. 10. 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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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8201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집안형편이 어려워 공장에서 일하며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으로 상경한 소년은 온도계 공장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앓아누웠다. 그러나 왜 아픈지 알 수가 없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 가서도 병명을 알 수 없어 무당을 불러 귀신 쫓는 굿까지 했다. 소년은 환청을 듣는가 하면 피가 나도록 몸을 긁는 등 고통에 시달리다가 병에 걸리고 반년이 지나기 전에 숨졌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E001293115&atcd=A0001546930

     

    가난하고 어린 노동자

     충남 서산군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4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난 문송면은 중학교의 졸업반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과 많은 형제들, 문송면이 당시에 학업을 지속할 방법은 고향을 떠나 대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며 야간학교를 다니는 것이었다. 공장 일을 하면서 영등포공고 야간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문송면은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는 이미 취업한 큰 형도 있었다.

     

    https://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2028

     

    15세 문송면

     그는 회사에서 신나로 압력계 커버를 닦는 일을 하다가 12월 말 온도계 부서로 옮겨가 환기 시설이 없는 좁은 공간에서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했다. 작업장에는 수은 방울이 널려있었고 겨울에 난로를 켜놓아 이 수은이 증발하여 공기 중에 확산되고 있었다. 입사 두 달이 되어갈즈음 그는 두통, 식욕감퇴 등의 증세로 병원을 찾기 시작했으나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430520&memberNo=6415223

     

    어린 그가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문송면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제대로 된 진단이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사이에 담당 주치의의 질문 "환자 직업이 뭐죠?"가 실마리가 되었다. 이전의 병원에서는 중3~고1 사이 15살 환자가 수은을 다루는 노동자일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혈액과 모발 검사를 시행하자 기준치를 넘는 수은과 구리가 검출됐다. 1988년 3월 22일 그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수은 중독 및 유기용제(신나) 중독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 병명을 알았으니 치료할 길이 생겼다고 희망을 쥐고 있던 가족들은 더 큰 절벽 앞에 몸서리칠 수 밖에 없었다.

     

    https://archives.kdemo.or.kr/contents/view/244

     

    존중받지 못한 생명

     회사는 시골 농약이나 음식물에 의한 수은 중독일 수 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고 직업병 요양신청서에 의도적으로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어준 의사를 찾아가 따지고 가족들에게 횡포를 부렸다. 한술 더 떠 노동부는 회사의 의도적 날인 회피에 대해 감시하기 보다는 그것을 이유로 들어 요양신청을 반려했고, 서울대학병원이 산재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협성 지정 한강성심병원의 진단서를 요구하는 등 산재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

     1988년 5월 11일, 동아일보에 문송면 수은 중독에 관한 최초의 기사가 실린다. 그때서야 노동부는 가톨릭의댜에 부랴부랴 직업병 심사를 의뢰했고, 6월 20일이 되어서야 산재요양 승인서를 받게 된다. 그렇게도 바라던 직업병 판정을 받았음에도 그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7월 2일 새벽 2시 30분에 사망한다.

     

    https://m.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1807022226005

     

    직업병 투쟁의 시작

     진상조사단이 발표한 노동부의 산업재해 의혹은 충격적이었다. 노동부는 해당 회사의 노동자들 중 6명이 수은과 유기용제에 의해 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은폐했다는 관련 문서들을 발굴해 냈다. 최초로 직업병이 사회문제가 되었다. 다른 회사의 피해자들도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문송면 사건은 산재·직업병 투쟁의 불씨가 되었다.

     

    https://m.blog.naver.com/waterheat/220905796914

     

    문송면군의 사례와 비슷한 일본의 '미나마타병'

     1956년 일본 구마모토 현 미나마타시의 지명을 따 '미나마타병'으로 불리게 되는 공해병이 처음 보고되었다. 미나마타 지역 공장들에서 유출된 폐수로 인한 수은 중독 사례였다. 1956년 5월 첫 환자가 보고된 후 6개월간 경련, 언어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며 총 40명의 '미나마타병' 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14명이 사망하였다. 증상이 없는 사람의 머리카락에서 191ppm의 수은이 검출된 반면 환자의 머리카락에서는 705ppm의 수은이 검출되며, 사인인 공장 폐수 속 수은으로 좁혀졌다. 일본 정부는 12년이 지난 1968년 9월 26일 '미나마타병'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병이 "질소비료공장에서 배출된 메틸수은 화합물이 원인인 공해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문송면군의 사건이 있기 20년 전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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