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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블경제 02 : 최초의 거품 1630년대 튤립 버블
    지식 창고 2022. 3.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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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blog.daum.net/cbg0006/12996427

     

    네덜란드와 튤립

     17세기초 오스만 투르크가 아시아 대륙에서 자생하는 튤립을 유럽에 소개한다. 네덜란드 인들은 도도한 자태에 아름다움을 갖춘 튤립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고, 돈 많은 식물 애호가들은 비싼 가격으로 튤립을 사들였다.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튤립 뿌리 거래에 참여했다. 튤립 뿌리는 양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수가 한정되었고, 수요가 몰리자 가격이 급등했다. 튤립 뿌리를 사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돌면서 영주는 물론 장인, 농민들도 투기에 참여했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품종인 '센페이 아우구스투스'로 '영원한 황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 튤립의 가격은 집 한 채 값과 맞먹었다.

     

    https://www.simpol.co.kr/front/productdetail.php?productcode=005005000000019639

     

    왜 튤립이었을까?

     튤립은 초기엔 부호나 꽃 애호가들 사이에 퍼져나가다가 한 식물학자가 변종을 만들어 모양과 색깔이 다양해지면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튤립의 변종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다. 바이러스에 의해 변종된 꽃의 인자는 뿌리에 숨겨져 있었고, 따라서 뿌리가 중요시되었다. 돈이 있는 자들은 앞을 다투어 희귀종 튤립의 뿌리를 찾았다. 희귀종을 잘 키우면 돈이 되고 아름다운 변종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더 큰 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4/2017050400019.html

     

    튤립으로 몰려든 사람들

     1620년대에 튤립 재배자들은 모두 돈을 벌었고, 튤립 불패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비싸고 희귀한 구근은 20분의1 그램 단위로 거래되었고, 보통 구근은 두렁 단위로 거래되었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입도선매 형식의 선물시장도 생겨났다. 한겨울에도 여름에 나올 구근에 대한 거래가 이뤄지면서 시장은 연중 열리게 되었다. 1636년엔 튤립 구근 가격이 한번도 꺽이지 않고 오름세를 지속했다.

     

    https://www.mk.co.kr/premium/print/29814/

     

    1637년 2월

     2월 3일 튤립 구근의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튤립 시장에는 더 이상 사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고, 그날 이후 공황심리가 팽배해졌다. 이틀날부터 튤립 구근 가격은 엄청나게 폭락하기 시작했다. 불과 4개월 사이에 가격이 95~99%가 빠졌다.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었고, 선물계약을 맺은 사람들은 도망을 쳤다. 튤립가격 하락은 이듬해인 1638년에도 이어졌다.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채무이행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지만, 채무자에겐 이행 능력이 없었다. 채권자들은 정부에 지원을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2012041424021&code=115

     

    튤립파동 그 이후

     튤립 버블과 붕괴는 네덜란드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어음과 선물거래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문화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네덜란드에는 당시 신교 칼빈주의가 퍼졌는데, 튤립 파동 때 사람들은 금욕적인 태도를 잃어버렸다. 거품이 꺼진 후에 그들은 다시 독실한 칼빈주의로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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