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세상이 파괴해버린 남자 : IQ300의 천재 윌리엄 시디즈
    역사 이야기 2024. 11. 17. 13:00
    반응형

     

     

    특별한 아이

     1898년 4월 1일 특별한 아이가 태어난다. 이 특별한 아이는 6개월만에 스스로 죽을 떠서 먹었고 9개월 만에 '달'이란 단어를 정확히 말했다. 2세가 되자 신문을 읽었고 4세에는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등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아이가 바로 아이큐 300의 천재 윌리엄 시디즈였다.

     윌리엄의 아버지는 대학교수, 어머니는 의사로 둘다 지적인 인물이었다. 아이의 비범함을 느낀 그들은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특히 윌리엄의 아버지 보리스 시디스는 하버드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로, 인간의 지능과 심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엄마 역시 교육에 큰 열정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들은 윌리엄의 지능을 조기에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이게 된다.

     윌리엄의 부모는 그가 일반 학교에 다니는 것을 원치 않았다. 대신 집에서 그를 교육하며, 일반 초등 교육 과정을 뛰어넘는 내용을 가르쳤다. 그가 배우던 학문적 수준은 초등학생 수준을 훨씬 넘어섰고 그가 11세가 되었을 때는 일반 성인들을 능가하는 수준의 지식을 갖추게 된다.

     

     

    세상의 주목 속에서 길을 잃다

      윌리엄은 1909년 11세의 나이로 하버드에 입학하게 된다. 그의 입학은 언론의 대서 특필되었고 세간의 시선은 모두 그를 향하게 된다. 게다가 하버드는 대부분 성인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11세 소년이었던 윌리엄이 성인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어딜 가든 어떤 행동을 하든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따랐고 아직 사회적으로 미숙했던 윌리엄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그를 동등한 학생으로 대하기 보다는 신기한 인물로 대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에 따라 시디즈는 더 깊은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17세가 되었을 때 그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텍사스의 라이스 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되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미숙했던 시디즈는 학생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했다. 시디즈는 이론적으로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에는 여러움을 겪었다.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 이상의 소통을 요구하는데 이에 서툴렀던 시디즈는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생들과의 소통 뿐만 아니라 교수들 사이에서도 고립감을 느꼈다. 또 교수직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과 부담감은 그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만다.

     

     

    사회에 맞서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후 시디즈는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권력 구조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정부의 억압적 체제를 비판했다. 그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에 체포되게 된다. 이후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부모님의 노력으로 감옥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었고 이후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사회적 갈등 후 찾아온 고독

     재판 이후 시디즈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은둔적인 삶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며, 사회적 활동이나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시디즈는 자신의 사상과 연구 결과를 대중에 알리기 위해 여러 글을 쓰게 되는게 대부분 가명으로 집필을 하게 된다. 그가 쓴 글은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평화주의와 같은 사회적 , 정치적 주제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철학을 담고 있었다. 

    시디즈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 독립적으로 연구를 계속했다. 특히 수학, 물리학, 우주론 등의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논문과 사상도 정리해 갔다. 시디즈는 계속해서 연구와 집필을 이어갔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는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가 쓴 글은 수익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가난하게 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더욱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1944년 7월 17일, 시디즈는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그의 나이는 46세에 불과했으며, 그는 사망 당시까지도 혼자였다. 그의 죽음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그가 생전 남긴 연구와 사상도 대중에게 크게 주목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천재의 쓸쓸한 죽음이었다.

     

    728x9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