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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시대 마녀사냥 01 : 마녀재판의 시작
    여자 이야기 2021. 5. 2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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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사냥의 발단이 된 기독교 집단 '알비'

     교황의 권력이 매우 강력했던 12세기 중엽, 프랑스 남쪽에서는 '알비'라는 기독교 집단이 크게 번성했다. 그들은 정신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하면서 거창하고 웅장한 교회의 의식은 헛치레이며, 십자가는 예수가 죽은 도구이므로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 로마 교황청은 이들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알비파를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이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사절을 보내는데 알비파는 이를 거부하고 사절까지 죽이게 된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알비파를 '이단'이라 선언하고 토벌할 군대를 결성했다. 4차 십자군 원정이었다. 이들이 "이단자를 어떻게 구별하느냐?"라고 질문하자 교황청은 "모두 죽여라. 하늘에서 주님이 가려내실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알비파의 저항은 예상보다 거세 20여 년 만에야 진압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이단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가 달라졌다. 교황청은 그들이 알비파같이 성장하기 전에 그 싹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다.

     

     이단 심문관

     교황청은 전문적인 이단 퇴치 조직을 만들어 유럽 전역에 '이단 심문관'을 파견한다. 이단 심문관들은 독실한 신앙심으로 무장한 성직자로 예외는 없고 원칙만 있었다. 그들은 주로 고발에 의존해서 이단자를 처벌했는데 심문관은 이단 혐의자를 고문해서라도 자백하게 만들어 자신의 권위를 세웠다. 어느덧 이단으로 고발당한 사람은 무조건 유죄로 결정되는 '전통'이 확립되었고, 심문관들의 맹활약으로 이단자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혼돈의 시기와 마녀

     유럽의 13~14세기는 혼돈의 시기였다. 1347년에 창궐한 흑사병은 전체 유럽 인구 3분의 1의 생명을 앗아갔다. 비슷한 시기에 발발한 백년전쟁과 종교전쟁, 독일 농민전쟁,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등이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 이전에는 작은 빙하기로 불릴 만큼 자연재해가 잇따라 일어나는 바람에 흉년도 계속됐다. 이렇게 불안과 공포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했지만 기도도 소용은 없었다. 기댈 데 없는 이들은 점점 이 모든 일을 악마의 소행이라 믿기 시작했고 이단에 대한 종교재판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단과 악마를 결합시켰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 악마가 있다고 믿기 시작했고, 이단 심판에서 보았던 '악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점쟁이와 민간 치료사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알 수 없는 주문과 약으로 병도 낫게 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가질 수 없는 '어떤 힘'이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이단 심문소에 그들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고문으로 물든 마녀재판

     마녀는 가장 무거운 범죄이므로 유죄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것, 사바트를 급습하는 것, 악마와 성교 현장을 잡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증거는 악마가 마녀를 도와 미리 없앴으므로 대부분 증인과 증언에 의존했다. 

     마녀를 색출하기 위해 마녀시험을 보기도 했는데 그중 물에 빠뜨기리는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이다. 마녀 혐의자의 손발을 묶은 뒤 물에 빠뜨려 떠오르면 마녀라는 증거였고 가라앉아 익사하면 그제야 비로소 마녀의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녀시험'을 통과했다면 마지막으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법은 원칙적으로 피를 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문을 금지했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이단과 마녀 혐의자에게는 무차별적으로 실시되었다. 고문은 되도록 죽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공포심을 심어주는 고통스러운 방법을 썼다. 악마가 몰래 마녀의 힘을 북돋워주고, 마녀는 고통을 즐기는 변태이며, 살아서라도 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고문을 합리화했다.

     

    화형

     화형식이 거행되는 날, 여명과 함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감옥에 있는 마녀의 머리를 빡빡 깎고,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힌다. 풍성한 아침 식사에 포도주까지 준다. 밧줄로 꽁꽁 묶인 마녀가 광장에 등장하면 군중은 환호하면서 조롱과 비난, 욕설을 퍼붓는다. 군중은 화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녀들에게 돌을 던졌다. 집행관들은 마녀들을 쇠사슬로 묶은 후 즉각 불을 지핀다. 종종 재판 기록도 같이 붙태웠다. 마녀의 기운이 붙은 것들을 완전히 없애고, 조작된 기록물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였다. 쇠기둥에 묶였던 마녀는 얼마 후 뼈와 재만 남게 되는데, 집행관들이 이를 빻아 강물에 흘려버림으로써 마녀재판의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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