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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마녀사냥 03 : 마녀사냥의 종식여자 이야기 2021. 5. 22. 07:00반응형
마녀재판에 희생된 여자들
마녀로 처형당한 사람들은 주로 여자였다. 기독교에서 악마의 유혹의 넘어간 이브의 후예인 여성은 신앙적으로 약한 존재였으며, 금욕 생활을 하는 성직자에게 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마녀 재판의 교과서 였던 <마녀의 망치>는 여성을 지독하게 경멸했다.
직업으로 보면 점쟁이, 산파, 요리사, 민간요법 치료사가 많았다. 요리사와 민간요법 치료사는 전염병이 돌 때 고발을 당했고 산파는 출산한 아이가 죽거나 기형의 아이가 나왔을 때 신고당하는 일이 많았다. 점쟁이나 무당은 그들이 가진 예언 능력을 악마에게서 받았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마녀의 나이는 대개 50살이 넘은 노인으로 노망이나 치매가 병이란 것을 알 리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신 이상 증세는 기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심신장애인, 떠돌이, 거지, 외국인, 집시 등도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었는데 이들은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해 재판 절차까지 생략당했다. 심신장애인은 악마가 몸속에 들어간 대표적인 예였고, 부유한 유대인도 그들의 재산을 노린 사람들의 고발이나 예수를 고발한 민족이라는 이유로 마녀재판에 넘겨졌다.
마녀사냥의 대표사례 잔다르크
잔다르크는 프랑스 북부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6세에 프랑스를 구하라는 천사의 계시를 듣고 참전한다. 그녀는 두려움 없이 맨 앞에서 싸웠고, 헌신적인 신앙심을 보여주었다. 잔 다르크가 이끄는 프랑스 군은 가는 곳마다 승리했다. 흰색 갑옷을 입은 잔 다르크는 영국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프랑스에서는 성녀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전투에서 승리할수록 높아지는 잔 다르크의 인기는 왕 샤를 7세와 귀족들이 그녀를 시기하게 만들었고, 귀족들의 외면 속에서 홀로 싸운 잔 다르크는 콩피에뉴 전투에서 영국에 포로로 잡히게 된다. 영국은 그녀의 몸값으로 엄청난 금액을 부르는데 프랑스 왕은 그 제안에 침묵한다.
영국은 골치가 아팠다. 잔 다르크를 죽인다면 프랑스 국민의 분노를 사서 앞으로의 전쟁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고, 그렇다고 풀어줄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그녀를 이단 법정에 세우기로 했다. '마녀'로 판명되면 잔 다르크를 죽일 명분을 얻음과 동시에 프랑스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거양득을 거둘 수 있었다. 1431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있는 루앙 광장에서 19세 소녀 잔 다르크는 화형을 당한다.
잔 다르크는 마녀사냥의 위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과 프랑스의 통치자들은 그녀가 마녀가 아님을 익히 알고 있었다.
세일럼 마녀 사건
1692년 2월,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10살 안밖의 소녀 세 명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헛소리를 질러대는 사건이 벌어진다. 목사의 기도도, 의사의 처방도 안 듣자 '악마의 짓'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목사는 소녀들에게 마법을 건 사람, 마녀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무섭게 윽박질렀다. 겁먹은 소녀들은 여자 셋을 지목했다. 하지만 그 여자들이 감옥에 갇힌 후에도 소녀들의 증세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다른 소녀들까지 나타났다. 다시 그들을 심문한 결과 다수의 마녀가 등장했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무려 100여 명이 감옥에 갇혔다. 그중에는 네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도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마녀 19명이 화형에 처해졌고, 어린이 다섯 명은 감옥에서 죽게 된다.
현대 정신 의학자들은 어린 소녀들이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분열을 일으켰으리라고 본다. 당시 영국과 유럽에서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던 청교도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여 그들만의 마을(세일럼)을 건설했다. 항상 기도하고 육체노동을 하는 경건한 생활 속에서 남자들은 여자와 어린아이 들에게 복종을 명령했다고 한다.
마녀사냥의 종식
마녀사냥의 전성기에는 전염병, 흉작, 전쟁 등으로 사회가 매우 불안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면서 총성은 줄어들고 기상이변도 없었으며, 인구도 꾸준히 증가했다.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외톨이로 사는 늙은 노파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마녀사냥의 종말은 특별한 계기 없이, 시작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종교의 영향력이 매우 작아졌다는 점이다. 교황의 권위는 세속을 다스릴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뉴턴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하느님의 창조 신화'는 깨지기 시작했다. 철학자들도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제도의 변화는 마녀사냥이 급격히 줄어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판사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외톨이 노파를 마녀로 고발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반드시 필요했고 악마의 표식도 의학의 발달로 설득력을 잃었다. 무엇보다 고문이 크게 줄어들었다. 고통에 의한 자백은 더 이상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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