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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백작부인 '바토리 에르제베트'여자 이야기 2021. 7. 30. 07:00반응형
악녀의 탄생
1610년 12월 26일 헝가리의 고성 차흐티체에 국왕이 선임한 특별조사관 트루조가 들이닥친다. 상당한 증인을 이미 확보했던 트루조는 백작부인과 하녀들을 다그쳐 세상을 놀라게 할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혀낸다. 15~16세기 헝가리 유력 가문의 일원으로 총사령관의 미망인이기도 했던 바토리는 이후 악녀의 대명사가 된다.
바토리의 혐의
바토리는 귀족으로 태어나 15세에 결혼, 다섯 남매를 두었으나 헝가리의 전쟁영웅인 남편의 전사로 사별하고 만다. 42세 나이로 미망인이 된 그녀는 늙어서 새로운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강박감에 젖어 처녀의 피가 젊음을 유지해준다는 미신에 빠져들었다. 납치한 소녀를 긴 못이 박힌 원통에 감금한 뒤 천장에 매달아 흔들어 피를 뽑고는 그 아래 욕조에서 피의 목욕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일기장에 적혔다는 희생자만 612명. 실제로는 9~11년 동안 1,500명에 달했다는 추정도 있다. 처녀들이 부족해지자 귀족예절학교를 세워 25명 단위로 납치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사건에 관련된 하인들은 모두 참수 당했지만 그녀는 귀족이어서 참형을 면하고 독방에 갇혀 4년 뒤 자살로 추정되는 최후를 맞는다.
모든 것은 진실일까?
1985년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알려진 것과 달리 연쇄살인마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헝가리의 역사 학자는 죄명이 없는 에르제베트의 재판 기록을 증거로 내세웠다. 구체적 죄명과 범행 내용이 정확히 명시돼 있는데 에르제베트의 재판 내용에는 오직 마녀이기 때문에 종신 구금형을 선고했다고 적혀있었다.
또 에르제베트의 일기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당시 조사관들은 에르제베트가 자신의 일기장에 살해 명단을 적었다고 밝혔지만 이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에르제베트의 시녀들이 재판 직전 전부 사형당했다는 사실. 에르제베트의 시녀들은 그의 범죄에 가담했다는 명목으로 재판 전 화형당했다.
헝가리 역사학자는 이 모든 것은 에르베제트의 사촌 오빠이자 당시 헝가리 국왕이었던 마티아스가 꾸민 짓이라고 주장했다. 에르제베트는 마티아스가 전쟁 자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거절했고 마티아스는 이에 분노하여 에르제베트의 재산을 몰수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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