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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 01 : 여성 노동자에게 가해진 폭력
    여자 이야기 2021. 8. 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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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s://www.incheo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858

     

    여성들이 선망하던 꿈의 직장

     동일방직은 70년대 인천의 대표적인 공장 중 하나로 명성이 자자했기에,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선망하는 꿈의 직장이었다. 시설과 급여 등 여건과 환경이 다른 공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았지만, 그만큼 노동 강도는 만만치 않게 강했다. 동일방직은 주로 솜에서 실을 뽑아 면포를 만들거나, 화학섬유제품을 생산했다. 생산직 대부분은 여성이었는데 이들의 업무는 솜뭉치를 실로 만드는 '방적'과 실로 옷감을 짜는 '직포'로 나뉘었다.

     

    출처 - https://news.imaeil.com/Culture/2015032305132153609?ismobile=true

     

    하지만 노동환경은 너무 가혹했다

     당시에도 법정 근로시간은 일일 8시간이었지만 12~13시간 근무는 기본이었다. 잔업 이후 근무교대까지 하려면 밥 한술 제대로 뜰 여유도 없었다. 특히 정방은 실이 기계에서 나오다 끊어지면 빠르게 빼서 연결해줘야만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한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기계를 멈춰버리는 것 아니고서는 굶는 게 당연했기에, 노동자 상당수가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작업환경은 어찌나 열악한지, 솜먼지가 공중에 펄펄 날려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방적공장은 실을 뽑을 때 적정 온도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겨울에도 실내 온도가 25~26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더웠다. 여름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였지만 환기시설조차 없는 공장에서 냉방은 꿈도 못 꿨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 때문에 땀띠를 달고 살아야 했고, 발은 무좀균에 감염됐다.

     하지만 여공들은 당연한 삶이라 생각했고, 소중한 직장이라 여겼다.

     

    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2102261419131

     

    여성 노동자의 지위

     동일방직의 남녀성비는 2대8 정도로 여성의 수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관리직 대부분은 남성이 차지했다. 위에서부터 대리-담임-반장-조장 체계로 돌아갔는데 조장과 반장까지는 숙련된 생산직 노동자 가운데서 선발하기 때문에 여성도 가능했지만, 관리직급인 대리와 담임은 대다수 남성이었다.

     임금차이도 당연했다. 당시 여성노동자의 임금이 70원이었다면, 남성은 500~700원 선이었다고 한다. 지금보면 남녀의 임금 격차가 너무 커보이지만 1970년대 '여성노동자, 그리고 지식' 논문에는 실제 70년대 말 남성노동자의 90% 이상이 월 1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았다면, 여성은 평균 5~6만원에 그쳤다는 기록이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에서도 차별받아야 했다. 당시에는 모든 노조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였고, 각 산업별로 공장 단위의 지부가 존재하는 식이었다. 동일방직에는 일찍부터 노조가 존재했는데, 이 역시 남성노동자들이 지배해왔다. 게다가 어용노조(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보다 오히려 회사에 아첨만 하는 노조)였던 탓에 여성노동자들의 권익개선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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