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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공순이여자 이야기 2021. 7. 17. 21:51반응형
공순이?
낮은 천장, 어두컴컴한 조명, 뿌연 먼지, 장시간 노동으로 피를 쏟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버스비 한 푼이 아까워 지친 몸을 이끌고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터벅터벅 걸었고, 붕어빵 한 개 앞에서도 그저 군침만 삼키고 온 몸에서 펄펄 열이 나도 약도 사먹지 못한 채 아픈 몸을 이끌고 또다시 먼지구덩이 속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월급날이면 그 상처투성이 월급 몇 푼을 거의 모두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식구들이 걱정할까봐 힘들다는 말 한마디 내비치지 않고 '괜찮다' '잘 먹고 잘 지내니 걱정말라'는 거짓말만 반복했다. '학비는 내가 댈 테니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도 그 시대엔 참으로 익숙한 말이었다.
30년 전, 우리에게 노동은 곧 '생존'의 문제였다. 먹고 살기 위해, 배고픔을 피하기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노동해야 했고, 기름밥, 먼지밥 먹는 그들에겐 '공돌이' '공순이' '시다'같은 이름을 붙였다. 70~80년대 '공돌이 · 공순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를 비하하는 말이었다.
공장으로 가야 했던 사람들
1960년대 시작된 산업화와 더불어 '이촌향도'(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함)가 시작됐다. 1970년대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는 대게 1950년 전후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인 교육은 집안의 '아들'에게 몰렸다. 딸들의 교육은 초등학교 전후로 끝났고, 가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 도시의 공장으로 모여들었다.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 어렵지만 그때는 더 어려웠죠, 중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못간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공장에 가면 기술 배우고 돈 벌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공장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죠. 친구들이 다 그랬던 것 같아요."
극심한 차별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날이 이어졌고, 여공들이 많이 모였던 봉제공장엔 먼지가 가득해 늘 호흡기 질환에 시달렸다. 일부 기업주들은 밤샘 작업을 시키기도 했는데, 졸면서 일하면 생산성이 낮아질까 봐 잠 안 오는 약을 피로회복제로 속이고 주기도 했다. 공장의 매출이 몇십 억대가 넘어도 17세 여공은 한 달에 2만 2,000원 정도를 급여로 받았다. 사글세를 내고, 식비와 교통비를 내면 고작 1,000원이 수중에 남았다. 그것도 구로공단에 처음 들어가면 견습생이라 1만 원을 임금으로 받았다. 일을 오래 하면 급여가 오르긴 했지만, 돈을 많이 주기 싫은 기업주는 숙련된 여공을 해고하고 다시 견습공을 채용해 인력을 보충했다.
급여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여공들이 공장에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몸수색'. 작업장에 있는 물건 중 밖으로 '빼돌리는' 제품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한 사업주들이 퇴근하는 여공들을 대상으로 몸수색을 하였다. 관리자는 상의에서 하의까지 손으로 몸을 더듬어 훔친 물건이 없는 것을 확인했고 이는 남자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남성노동자들은 주로 설비를 정비하는 기능직으로 '일반직'에 속했다. 남성노동자들은 승진에 제한이 없었지만 여성노동자들은 달랐다. "생산직, 여공"으로 분류돼 "기껏해야 반장"까지 밖에 승진할 수 없었다. 여성노동자를 향한 폭언과 성희롱도 일상적이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
벌집이라 불리던 6.6㎡ 남짓한 공간. 누가 들고 나는지 모르는 그곳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공장에서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월급봉투는 고향집으로 보내고 얄팍해진 주머니로 구로구 가리봉 일명 '가리베가스'라 불리는 곳에서 양품점이나 음악다방을 찾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공순이라는 비웃음을 감내하며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상경한 10대 후반의 누이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이었다. 그들이 몸담고 일했던 구로공단은 1970년대 우리나라 수출 산업의 선두 주자이자 산업 공간의 중심지로서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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