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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동대지진 01 : 일본에 닥친 재앙과 학살의 시작
    역사 이야기 2022. 4.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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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06

     

    1923년 9월1일

     1923년 9월1일, 도쿄와 요코하마 주변에는 새벽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비가 개고 한낮의 더위가 시작될 정오 무렵 리히터 규모 7.9의 강한 진동이 관동 일대를 급습했다. 건물과 집, 나무들이 휘청이다 쓰러졌다. 도로는 땅 밑으로 꺼졌고, 다리는 끊어졌다. 도시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불과 13초간의 지진으로 관동 지역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06

     

    뒤이어 덮친 참사

     진동이 멈추자 거리 곳곳에서 불이 났다. 순식간에 발생한 화재는 강한 바람을 타고 도시 전체를 휩쓸었다. 불과 두 시간만에 도시가 화마에 휩싸였다. 피난민으로 북적였던 육군 피복 야적장에 불이 옮겨 붙으며 4만 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관동 지역 인구 1000만 명 가운데 이재민만 310만 명에 달했다. 14만2000명이 죽고, 3만 7000명이 실종됐다. 정작 지진보다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깔려 죽은 사람보다 불에 타 죽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압사자는 1만 명에 불과했다.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752

     

    일본정부의 유언비어

     지진 복구와 민심 수습 조치가 취해지던 중 '사회주의자와 조선인에 의한 방화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조선인이 도쿄시 전멸을 기도하여 폭탄을 투척할 뿐 아니라 독약을 사용하여 살해를 기도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유언비어가 유포되었다. 유언비어의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민간 발생성, 정부발생설, 민간·정부 발생설이 있다.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는 9월 1일부터 나돌기 시작하였고, 9월 2일에는 '조선인 폭동설'이 더욱 확대되었으며 전날보다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정부는 유언비어를 직접 유포하였을 뿐 아니라 유언비어를 믿고 조선인을 학살하는 일본인들의 행위를 묵인하였다. 조선인 학살의 처참한 비극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https://www.hani.co.kr/arti/PRINT/706934.html

     

    학살의 시작

     군대와 경찰이 조선인을 연행하고 죽이자 일본 민중은 유언비어를 사실로 확신하면서 자경단을 구성하였다. 자경단은 일본도와 죽창, 도끼 등으로 무장하고 중요한 장소나 지점에 검문소를 설치하였으며, 조선인 특유의 인상, 풍채, 특유의 발음, 풍속 등을 이용하여 조선인을 색출하였다. 학살당한 조선인에는 청장년층만이 아니라 여성, 임산부, 아이까지 섞여 있었다. 그야말로 조선인이라면 무차별로 학살한 것이었다. 학살 중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살해된 일본인, 오키나와인, 중국인도 생겨났다. 자경단의 학살 행위는 '자경' 즉 자기 마을 지키기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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