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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역사 이야기 2022. 2. 21. 16:34반응형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
1986년 4월 26일 새벽. 당시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동북부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 두 번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원전 직원이 전력통제 시스템을 시험하던 중 원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원자로의 과부화로 인해 발생한 1차 폭발은 1,000톤 무게의 반응로의 뚜껑을 파괴했고, 2~3초 뒤에 발생한 2차 폭발은 4호 원자로 건물의 상단부를 붕괴시켜 건물의 잔해와 원자로 내부에 있던 흑연 감속재를 발전소 여러 구역에 흩뿌렸다. 누출된 방사능 물질의 총량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400배였고, 이후 감속재인 흑연이 타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사방으로 누출되었다. 이 사고는 발생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레벨 7등급의 원자력 사고였다.
폭발의 원인은 '인재'
원자로에서는 핵분열과정으로 발생한 열을 물을 뜨겁게 데운 뒤 이때 발생하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냉각수는 뜨거워진 핵연료봉을 식히고, 열을 전달해서 증기도 만들며 계속 순환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헤서도 절대 전기가 끊기면 안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정전시 비상전력 공급이 얼마나 가능한지에 대해서 실험을 진행하려고 했다. 즉, 주 전원이 끊어진 상태에서 원자로의 터빈이 관성에 의해 회전할 때 그 회전에너지가 원자로의 냉각 펌프 등에 얼마나 오랫동안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작업자의 조작미숙으로 인해 원자로 내의 출력 급강하가 발생하게 된다.
사고의 은폐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한 도시인 프리피야트에는 발전소 직원과 연구원, 그들의 가족들을 포함한 5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특히 100km 내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가 있었기에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련 정부에서는 사고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고, 인근 주민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피폭당했다. 낙진은 전 유럽을 뒤덮었고 심지어는 일본과 홍콩에도 낙진이 떨어졌다. 중국과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북미/남미/아프리카 같은 지구 정반대편의 남반구를 빼고는 모조리 낙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위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방사능이 석관 밑에 봉인되어 있을 뿐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만들어진 석관은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피해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 이제 그 시간은 지났고, 페르노빌을 덮었던 석관의 수명도 끝날때가 되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정부는 새로운 석관을 설치하기로 결정한다. 2016년 'New Safe Confinement'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석관이 완성되었다. 새 차폐막으로 원자로 건물을 밀봉한 뒤에 내부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 한다. 하지만 사고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확실한 해결 방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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