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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노트, 마인드맵] 28 - 정유정
    책 이야기 2021. 11. 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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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형은 스승 누콘의 손에 구조됐다. 마야가 그를 찾아냈다. 그를 깨운 것도 마야였다. 눈뜨고 가장 먼저 대면한 것 역시 마야의 다갈색 눈이었다.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이었다.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담긴 눈이었다. 조심스레 물어오는 눈이었다.

     "대장, 내 아이들을 어쨌어?"


     동해는 애초부터 공익이 아니었다. 현역 입대 12개월 만에 자대를 발칵 뒤집어놓고 공익으로 전환된 놈이었다. 각 중대에서 기르는 개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했다. 뭔가에 욱한 나머지 패 죽인 것이 아니었다. 하룻밤 새에 저지른 미친 짓도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차례차례, 혀를 자르고 목젖 부위에 십자가 형상의 불 지짐을 해서 공공장소에 매단 패턴 행위였다. 군의관은 놈을 '장기적 치료가 필요한 인격 장애'로 진단했다.


     

     

     덤프의 적재함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개들이 구덩이로 떨어져 내렸다. 처음엔 몇 마리씩, 곧 무더기로 떨어진 개들은 곧장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누워 자빠진 동료의 몸을 딛고 서로의 머리를 밟으며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구덩이를 에워싼 군인들은 착검한 총 끝으로 개들을 찍어서 구덩이로 다시 떨어뜨렸다. 죽창 군인 둘은 철창 벽에 붙어 버티는 개들을 창으로 찍어 떼어냈다. 큰 개, 작은 개, 검은 개, 흰 개들이 눈이 찍히고, 뱃가죽이 뚫리고, 등을 꿰인 채 핏물을 내뿜으며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저것들 말이오. 엊그제까지 주인이란 것들이 보듬고 빨던 개들일 텐데. 살 처분하라고 내주자니 어째 못할 짓을 하는 것 같고, 데리고 살자니 무섭고. 그래서 저렇게 내다버린 거 아니겠소. 개가 사람 손에 있을 때나 개지, 거리로 나오면 맹수인데 어쩌자고 저런 무책임한 짓거리를 하는지"


     사흘 전엔 화장이 가능햇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화장을 맡았던 자원봉사자가 죽었고, 불을 뗄 기름이 떨어졌다. 링크엔 신원 파악조차 되지 않은 시신들이 수없이 누워 있었다. 저들은 군용 트럭에 실려 쓰레기 매립지로 갈 예정이었다. 사람과 개는 결국 같은 운명을 맞고 있는 셈이었다.


     체육관을 통제하는 군인도 날마다 줄어들었다. 의료팀처럼, 충원 없이 차근차근 소모되고 있는 모양새였다. 보급 헬기는 이틀째 오지 않았다. 기름이 없어 난방도 끊겼다. 작동되는 건 전기와 수도뿐이었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얘기 같았다. 죽든가, 살든가.


     윤주는 종종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가만있지 않는지. 안전한 자기 집을 두고 감염의 위험과 무장 군인, 추위와 허기가 기다리는 광장에 모이는 진짜 이유가 뭔지. 이 방에 홀러 남은 지금에야 그녀는 답을 알 것도 같았다. 그들은 '누군가'를 향해 모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 시켜줄 누군가, 시선을 맞대고 앉아 함께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뭔가를 나눠 먹을 수 있는 누군가, 시시각각 조여드는 죽음의 손을 잊게 해줄 누군가를 만나고자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각자의 집에서 텐트나 침낭 등을 가져와 함께 밤을 지내고,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 먹고, 하루 앞으로 다가온 '그날'을 준비했다. 저들은 가슴에 성배를 품은 자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배신을 잘하는 '희망'이라는 성배.


     매장 전, 보고 만졌던 그의 마지막 모습을 수도 없이 떠올렸다. 빰은 희고, 살갗은 축축하고, 몸은 딱딱했다. 젖은 나무를 만지는 것 같았다. 나무처럼 평온해 보였다. 어쩌면 나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 없는 세상에 가서.

     서재형,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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